Daily
삶의 지도

삶의 지도

글또 10기를 지원하며 삶의 지도를 작성 해보았습니다.
다시 한번 삶을 정리하며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고민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로게이머? 프로그래머


어린 시절, 나는 게임 대회에 나가서 줄곧 상을 받곤 했다. 게임을 좋아했던 이유는 친구들의 선망이나 용돈벌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몰입하여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오는 희열 때문이었다. 내가 하던 게임은 4~5인이 각자의 역할을 맡아 상대 팀과 경쟁하여 승리하는 팀 게임이었다. 우리는 매일 12시간 이상 연습하고, 연습이 끝나면 모여서 리플레이를 돌려보며 분석하곤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던 나는 주변 친구들의 분주한 입시 준비를 보며 일명 ‘수박 책’으로 불리는 대학 입시 책을 펼쳐보았다. 전공 관련 직업란에 ‘프로그래머’라고 적힌 것을 보고 프로게이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깊은 고민 없이 정보통신학과에 지원하게 되었고, 그걸 시작으로 코딩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스무 살, 대학교 1학년 때까지도 프로게이머 연습생과 비슷한 생활을 이어갔다. 별다른 관심 없이 입학한 대학이었기에 학업에는 소홀했고, 학점 평균 1점을 기록하며 학사 경고를 받고 휴학했다. 어릴 때 재미로 즐기던 게임과 달리, 직업으로서의 게임은 많이 달랐다. 학사 경고까지 받으며 게임에 몰두했지만, 프로의 문턱은 너무나도 높았다. 나름 상위 랭커였으나 프로로 성공하려면 게임 전체에서 손쉽게 30위 안에 들어야 했다. 0.1%가 아닌 0.001% 안에 들어야만 했다. 프로게이머의 신체적 능력의 전성기는 10대에서 20대 초반이다. 이때까지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형들은 하나둘씩 군대에 가기 시작했다. 사실상 20대 초반에 군대를 가면 프로게이머로서의 인생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애매한 재능을 가진 나 또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남들과 조금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함께 연습하던 형이 IT 병역특례라는 길을 알려주었다. IT 회사에서 근무하며 군 복무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하나의 탈출구처럼 느껴졌다. 홀린 듯 게이밍 컴퓨터까지 팔고 게임을 끊은 채 준비를 시작했다.


프로그래머로서의 삶

전공자이긴 했지만 대부분의 성적은 D 아니면 F였다. 사실상 수업에서 배운 것이 없었다. 유튜브를 보며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 고민했다. 도파민 중독자이자 관심 종자인 나는 프론트엔드 개발이 적성에 맞았다. HMR(Hot Module Replacement) 코드를 작성하면 즉각적으로 화면이 변했고, 그럴 때마다 도파민이 분비되었다. 또한 내가 만든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그 반응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시작한 프론트엔드 공부는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스터디카페에서 하루 12~14시간을 보내는 생활로 이어졌다. 게임을 할 때도 하루 10시부터 10시까지 연습이 기본이었기에, 가끔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 있어도 어렵지 않았다. 나는 독학으로 준비했는데,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우선 기업 채용 공고를 보며 주로 사용하는 기술 스택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 기술들을 공부하면서, 공부를 시작한 지 3개월부터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IT 병역특례 오픈 카톡방에 이력서를 올려 남들의 가감 없는 피드백을 받았다. 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투명한 피드백 문화의 혜택을 본 것 같다. 그렇게 준비했기에 노베이스에서 남들보다 조금 빨리 취업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직군의 사람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개발자로서의 삶은 게이머 시절과 비슷했다. 나는 운 좋게도 매출 0원에서 손익분기점(BEP)을 달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처음부터 함께할 수 있었다. 그 경험들은 어린 시절 게이머 때를 떠올리게 했다.


글을 쓰고 싶은 이유

취준생 때부터 다시 학교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가끔씩 글을 써왔다. 어느 날, 개인 블로그 도메인 배포와 관련하여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 구글링했는데, 어떤 블로그 글을 보고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글은 지금은 관리하지 않는 5년 전 내 블로그에 내가 쓴 글이었다. 이때 내가 쓴 글이 시간이 지나도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다른 날에는 동아리 후배와 이야기하던 중, 내 블로그 글을 읽고 개발자 준비에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단순한 회고 글이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꼈고, 더 정성을 들여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사실 ‘성장’이라는 단어는 이제 좀 지겹다. 하지만 이전의 내 회고들을 보면 생각도 글도 좀 더 단단하고 짜임새 있어졌음을 느낀다. 지금까지는 미래의 나를 독자로 삼아 글을 써왔지만,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를 배운 적은 없지만, 글또 활동을 통해 많은 글을 읽고 쓰며 좀 더 나은 미래의 내가 되고 싶다.